Page 3 - 한비21 (제5호) 2024년 11월 25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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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필 인적교류 100년 역사 속에서 답을 찾다
기회의 평등·다양성 존중·사회적 기여·차별 철폐가 세상을 바꾼다
▲ (좌측) 1920~30년대 필리핀 마닐라 거리 모습 (우측) 동 시기 평안북도 의주군의 모습. 89년 전 필리핀을 경유해 미국유학을 가려던 박윤화 선
생(필리핀 초대 한인회장, 의주군 출신)이 필리핀 땅을 처음 밟으며 보았을 풍경일 것이다.
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 기부터 1934년까지 필리핀은 죽음도 마다않는 독립 운동가
는 무엇일까? 과거에서 반면교 자치정부 수립을 위한 준비가 들이 일본요인암살 및 침략 거
사와 타산지석 사례를 찾아 현 하나씩 진행되었다. 점시설에 대한 공격 거사에 박
재의 판단기준으로 삼고 미래 우리는 평화로운 독립 및 권 차를 가하고 있었다.
를 대비하기 위함일 것이다. 력 이양 준비를 하는 필리핀을 흥미로운 점은 독립운동에 있
100년 전 필리핀은 미 군정 부러운 시선으로 지켜보아야만 어 인삼장수들의 역할은 매우
청 시대(제1공화국)를 끝냈다. 했다. 동시기 우리는 일제강점 컸다고 한다.
1916년 윌슨 미국 대통령이 '존 기를 겪으며 온갖 탄압을 받고 시사저널에 실린《이원혁의
스 법안(The Jones Act)'을 통 있었다. 임시정부하 만주일대는 ‘역사의 데자뷰’-47화 총대 없
과시켜 필리핀에 안정된 자치 독립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무 는 ‘상인 독립군’ 인삼 장수,
정부가 들어서면 독립을 인정 장독립투쟁을 활발히 전개하였 이들이 펼친 ‘인삼 독립운동’
하겠다고 명문화 하였다. 이 시 다. 국내에서는 3.1운동은 물론 의 숨은 이야기》편에 따르면,
1922년 조선 총독부 경무국이
“고려인삼의 중국 수출이 한인
독립운동에 이용되는 것에 상
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”고
본국에 보고할 정도였다는 대
목이 나온다.
당시 조선의 인삼무역 중심
지는 평안도 의주군으로 압록
강을 사이에 두고 청나라와 교
역을 하는 조선 제1 무역도시
▲ 의주 출신으로 대청 인삼교역독점권을 얻은 임상옥은 청나라 상인들이 인삼을 싸게 사려 담
합하여 불매한 것을 알고 이에 맞서 인삼을 불태우며 고도의 협상전을 벌인다. 결국 청나라 상인
들은 임상옥을 만류하며 불태운 인삼까지 포함해 비싼값에 인삼을 사들이게 된다. 5 페이지에 계속